누구든 좋아하는 것이 있고 반면에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갖고 싶고, 좋은 것을 먹고 싶고, 좋은 것을 하고 싶으며 또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요? 그‘좋음’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좋음’은 절대적 의미의‘좋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 좋음의 의미의 대부분은‘내게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좋음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좋음은 나에게는 좋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는 그런‘좋음’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유리하고 자신에게 편리하고 내 입맛에 맞아야 좋은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또 자신이 싫어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불편하면, 즐겁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싫음’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선악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사라지고 상대적인 가치가 우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의 중심에 있는 우리에게‘다른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좋음보다 바름’을 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좋고 싫음’은 개인적 취향일 수 있습니다. 저는 셀러드에 소스를 넣지 않고 즐깁니다. 아내는 반대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고 기호일 뿐입니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소스를 넣어 먹지 않는다고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해서 또는 하지 않아서 죄가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바로‘옳고 그름’의 문제인‘바름’의 일이 됩니다. 그러니 그것은 절대적인 가치인 것입니다. 때로 바름의 가치는 손해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성경의 기준에 선이고 바름이면 동의해야 하고, 당장은 좋음이지만 그것이 그른 일이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선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은 악으로 오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걸림돌이 되면,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때론 악과 동일하게 생각되니 인간으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릅니다. 절대적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변질시킨 결과입니다. 내게 좋은 사람이라도 바른 사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게 좋은 것이지만 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면, 내게는 불리하지만 옳고 바른 일이 있습니다. 내게는 좋지 않지만 옳고 바른 일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다른 생각’이 필요합니다. 좋음보다 바름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다른생각’이 우리를 가치 있는 인생으로, 위대함으로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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