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발견되는 나와 남이 다른 점’ 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웃음 나는 이야기지만, 현실적입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남이 손바닥만 한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 경건치 못한 것이고, 내가 작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활동적인 신앙이기 때문, 남이 새벽기도 못나오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고, 내가 새벽기도에 못나오는 이유는 워낙 사회적 활동이 많아서이다. 남이 눈물로 기도하면 유별난 신앙이고, 내가 눈물로 기도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남이 기도를 길게 하면 주책이 없는 까닭이고, 내가 기도를 길게 하는 까닭은 정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남이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이고, 내가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은 성경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남이 헌금을 적게 하는 것은 인색하기 때문이고, 내가 헌금을 적게 하는 것은 하나님은 과부의 엽전 두 푼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남이 타협하면 야합이고 내가 타협하면 정당한 양보이다. 남이 결혼식 참석을 위해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 신앙이 자라지 못한 때문이고, 내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가문의 평화를 위한 까닭이다. 남이 예배에 참석치 않는 것은 신앙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예배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는 성숙한 신앙 때문이란 것이고, 남이 예배 시간에 늦으면 ‘5분만 일찍 출발하지’ 내가 늦으면 ‘설교가 중요하지’라고 말하고, 남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면 ‘아니 벌써?’ 내가 직분을 받으면 ‘이제서야’ 라고 말한다. 남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는데’ 하며 내가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 ‘네 지경을 넓히리니’ 라 하고 남이 교회에 올 때 화장을 하는 것은 사치하기 때문이고, 내가 교회에 갈 때 정성 들여 화장을 하는 것은 최소한의 에티켓이라 한다. 남이 예배시간에 졸면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는 말씀이 생각나고, 내가 졸면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렇게 나와 남이 다릅니까?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은 바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겸손과 희생의 섬김을 배워야 합니다. 스티그마는 흔적이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진정성 있는 믿음을 살 때 그분의 흔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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