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람들에게 절대가치관은 인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적 가치관을 주장하고 그것이 오늘을 사는 현대적인 가치관인 것처럼 뽐내며 자랑합니다. 가치기준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절대가치는 싫어지고 버려졌습니다. 객관적인 사고보다 주관적인 사고가 주도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특별히 바른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신앙 속에 혼합주의가 만연합니다. 큰 염려는 그런 상대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혼합주의적 신앙을 말하는 것이 포용력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절대신앙을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율법적인 신앙이라 치부하며 그런 목사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절대믿음, 절대신앙이 진짜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의 풍요와 돈의 권력, 쾌락의 유혹 앞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에 걸맞는 선택을 하고 그러한 삶의 태도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절대 신앙해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의 태도가 결정적인 키를 갖고 있습니다. 일상가운데서 하나님 우선순위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너지면 유일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은 흔들리고 얼마 되지 않아 상대적 가치관이 삶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깊고 넓어도 작은 돛단배를 무조건 가라앉힐 수는 없습니다. 또 아무리 큰 배라도 작은 구멍하나를 방치하면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이내 가라앉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의 기준이 중요할 것입니다. 어떤 선택에 앞서 생각할 것은, 긴급성과 중요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고, 긴급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고,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그리고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있습니다. 삶이 신앙입니다. 일상과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상과 신앙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선순위의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상과 신앙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일상의 기준이 신앙적일 때 신앙적인 가치관이 바로 서게 됩니다. 어느 때는 일상이 긴급하고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 신앙생활이 중요하고 긴급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둘의 충돌이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입니다. 긴급성과 중요성을 구별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현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미래에도 역시 중요한가? 이 일은 하면서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가치가 있는가? 꼭 이 일은 지금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가? 또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 한 일인가? 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일상이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선순위는 참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절대신앙의 가치 기준은 그래서 중요하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