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을 다니며 하늘의 아름다운 구름을 카메라에 담아 온 사진작가 헨리 랜스퍼드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충고했습니다. “땅만 보며 걷는 사람은 많은 것을 놓치고 마는 셈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의 방향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 혹은 관심하는 것 이상의 존재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며 살아가십니까?’ 이 질문은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땅을 보며 사는 사람의 삶은 혹 땅에 떨어진 동전 따위를 줍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늘을 보며, 그 찬란한 햇빛과 초롱초롱한 별들, 여러 모양의 아름다운 구름들을 벗하며 사는 사람의 삶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땅이 하늘과 다른 것처럼 하늘은 땅과 다릅니다. 땅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쳐들 수 없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는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땅은 아래에 있고 하늘은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땅을 보며 사는 삶’은 해변에 널린 생선 찌꺼기에 연연하는 보통 갈매기족의 삶과 상응하고, ‘하늘을 보며 사는 삶’은 갈매기족의 생활 방식과 관습의 벽을 부수고, 창공으로 치솟아 올라 높이 나는 데 주력하는 갈매기 조나단의 삶과 상응합니다. 먹는 것이 삶의 전부인 세계, ‘먹는 것’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소유욕이 유일한 가치로 전락해 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삶을 추구하는 조나단의‘위대한 비상’을 꿈꾸는 우리이기를 소원합니다. ‘하늘에 이르는 길은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된 삶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 소유하는 것, 지배하는 것에 지배당한 땅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 공유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관심을 둔 하늘의 세계와는 같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삶과 초월적인 삶은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관심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과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우리가 보는 것, 관심하는 것 이상일 수는 없습니다. 일상을 뛰어 넘고, 소유를 초월하고, 땅을 박차고 치솟아 올라 비행하는 그 자리에, 존재가 있고 하늘이 있습니다. 그곳에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가? 무엇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가? 땅인가, 하늘인가? 아래 있는 것인가, 위에 있는 것인가? 먹는 것인가, 나는 것인가? 소유인가, 존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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