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세 살배기 아이가 엄마에게 무언가 달라고 떼쓰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가 아무리 울며 졸라도 “아니에요. 그건 안돼요~”하며 그것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선반위에 있는 위험한 물건을 달라고 졸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엄마가“이 녀석 내가졌다. 이거 줄 테니까 조심해서 놀라라” 한다면 어떻게 될 까요? 아니,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는 위험하거나 해로운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주지 않습니다. 이때 만약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엄마가 주지 않는다고 다른 대상에게 조른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행동이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지성이면 감천’이라면서 특별한 소원이 생길 때 마다 장독대에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백일기도, 천일기도를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는 미성숙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묻지 않고 구하는 것, 이런 것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 하는데, 의외로 이런 기복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시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구할 태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이 지금 필요한 것이라면 당장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해롭거나 우리 신앙에 마이너스가 된다면 절대 허락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내 필요를 채워준다면 기도의 대상은 상관없다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언제든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알라딘 램프의 요정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이시기에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목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그런 인격적인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부리려 한다든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상처럼 취급하는 잘못된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뭐든 내 필요를 채워 주는 존재로 생각하고 섬기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아이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우상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깊이 교제함으로 그 분과 친밀함 가운데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방해하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장애물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문제도, 맞고 틀림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친밀함이 더해 갈수록 인격적인 관계의 수준이 달라지고 그 수준이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소원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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